일본 최초의 기독교 순교인 ‘26성인의 순교’가 일어나고,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금교령을 내리며 기독교인들을 탄압한다. 이에 반발한 신도들과 농민들은 1637년 규슈 시마바라에서 난을 일으키지만 그 결과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살해 당해 그 세력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어, 이 후 250여년 간 기
된 막부의 기독교인
탄압을 피해 농어촌 등에 숨어 신분을 숨긴 채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온 자들이다.
일본 내 기독교 신자:100만여명
(일본전체인구의 약1%)
주일 예배의 출석자:일본전체인구의 약0.2%
교회나 호텔에서의 기독교식 결혼 성행
교회형식 결혼식장 건물의 유행
1. 일본과 유럽의 교류시대 (일명 : 남만시대<1543-1650>)
일본역사에서 남만시대란 유럽인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1543년부터쇄국령 선포후 거의 모든 유럽인들이 열도에서 추방당했던 1650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남만(南蠻 - 남쪽의 오랑캐)이라는 한자어는 원래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
그림 .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1.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몰락
그림 4. 일본 다이묘의 참근교대(參勤交代)
그림 3. 막번 체제(幕藩 體制)
그림 2. 세키가하라 전투(1600~1603)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열도를 통일한 후, 각 영주 및 일본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임진왜란(壬辰
1. 에도 막부의 수립,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
그림 4. 에도 막부 시대의 계급
그림 3. 막부 직할 세력과 다이묘 세력
그림 2. 세키가하라 전투(1600~1603)
그림 5. 일본 다이묘의 참근교대(參勤交代)
그림 1.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토미
요시노부가 덴노 천황에게 권력을 반납하는 1867년(대정봉환)까지 265년간 일본을 통치한 무가 정권
ㆍ전국시대의 혼란기 수습
- 인구, 국력의 안정적인 신장
- 일본 전체를 안정적으로 지배
- 일본사 무가 정권 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
- 일본 역사 중 상대적으로 중앙의 권력이 강했던
시기
1. 에도 막부의 수립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 격파
→ 에도 막부 수립
제15대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덴노에게 권력을
반납하는 1867년(대정봉환)까지
→ 265년간 일본을 통치한 무가 정권
전국시대의 혼란기 수습
- 인구, 국력의 안정
기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함
그러나 당시 기독교의 본거지였던 큐슈마자 평정하자, 1587년 반천련(포루투칼어의 파르테의 일본식 한자) 추방령을 내리고 기독교를 금지시키기 시작
기독교 금지령 선포, 쇄국의 시대
그러나 반천련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기독교탄압은 시행되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나오고 신자수도 급속히 늘어났다. 그러나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주종관계보다도 신 제우스를 존중하는 것을 두려워해 금지하고, 토쿠가와막부도 1612년에 금지령을 내리고, 다음해에는 신자를 발견했을 경우, 유배나 사형에 처하는 등 철저하게 탄압했다. 메이지가 되자, 겨우 신
않았다.
㉡ 일제는 한국어에 비해 2배 정도로 일본어를 배정함으로써 일본어교육을 강화하고, 수신교과를 중시했으며, 박물, 물리, 화학을 이과로 통합하고, 실업과 법제와 경제를 실업으로 통합했다.
㉢ 영어를 선택으로 하여 상급학교에의 진학을 장려하지 않았다.
(4) 민족교육의 탄압